무더위
폭염, 무더위다. 2026년 8월 6일 오후 5시 현재 기온이 37.9도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합쳐진 말이다. '물더위'에서 'ㄹ'이 떨어져 무더위가 됐다. 조상들은 더위를 습기가 많은 더위인 '무더위'와 그냥 '더위'로 구분했다.
습열
공기의 열전도율은 0.026 정도다. 물은 0.6이다. 23배 차이다. 같은 온도라도 물이 끼어들면 열이 23배 빠르게 몸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 몸의 냉각 장치는 땀이다. 정확히는 땀이 아니라 땀의 증발이다. 땀은 증발하면서 몸에서 열을 빼앗아 간다. 그런데 공기가 이미 물로 가득 차 있으면 땀은 증발하지 못한다. 그냥 흘러내린다. 냉각기가 꺼진 채로 열만 들어온다.
목욕탕에 가면 이 원리를 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건식 사우나 온도계는 90도 정도이고, 습식 사우나 온도계는 45도 정도이다. 2배 차이다. 그런데 90도 방에서 10분을 앉아 있어도, 45도 방에서는 3분 만에 문을 밀고 나온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이 낀 열은 다른 열이다. 한의학에서는 습열(濕熱)이라 한다.
유럽과 에어컨
유럽의 여름은 오랫동안 사막 쪽에 가까웠다. 최고 기온이 32도 남짓이고 습도가 낮아 밤이면 20도 밑으로 떨어졌다. 두꺼운 석조 건물 안에서 저녁까지만 버티면 됐다.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퍼센트다. 미국은 90퍼센트, 한국과 일본도 90퍼센트를 넘는다.
2026년 여름, 그 계산이 무너졌다. 5월 하순부터 평년보다 10~15도 높은 기온이 유럽을 덮쳤다. 6월 23일 프랑스 피소스는 44.3도를 찍었다. 관측 사상 최고였다. 문제는 낮이 아니라 밤이었다. 두꺼운 벽이 골고루 달궈지자 밤새 열을 토해냈다. 열을 막던 구조가 열을 저장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올라간 것은 기온만이 아니었다. 6월 지중해의 표층 수온은 평균 21.0도로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 프랑스 남부 리옹만과 이탈리아 서쪽 바다는 평년보다 6도 더 뜨거웠다. 바다가 뜨거우면 증발이 늘어난다. 게다가 공기는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수증기를 7퍼센트씩 더 머금는다. 뜨거워진 바다가 물을 뿜어냈고, 뜨거워진 공기가 그 물을 붙잡았다. 유럽의 여름이 습해진 것이다. 밤이 되어도 몸의 땀이 마르지 않았고, 열대야가 이어졌다.
6월 21일부터 28일까지 한 주 동안 유럽 27개국에서 1만 명이 넘는 초과 사망이 발생했다. 프랑스 사망자의 85퍼센트가 65세 이상이었고, 파리 일대에서는 자택 사망이 약 40퍼센트 늘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죽었다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유럽의 주택과 직장, 학교가 이런 기온에 맞춰 지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더위에는 익숙했지만, 무더위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집도, 도시도, 사람 몸도 물먹은 더위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사막과 서울
1913년 7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에서 기온 56.7도가 기록됐다. 아직도 세계 공식 최고 기온이다. 그러나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견딜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건조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여름 습도는 10%대다. 땀이 나오는 즉시 마르고, 그늘에 들어가면 체온이 내려가고, 해가 지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서울 기온이 56.7도라면 살아남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사막의 더위는 무더위가 아니다. 그냥 더위다. 두 단어를 나눠 쓴 이유가 있었다.
한열과 조습이라는 2개의 축
《황제내경》 「소문(素問)」은 하늘의 기운을 여섯으로 나눈다. 육기(六氣)라 한다. 한(寒)·서(暑)·조(燥)·습(濕)·풍(風)·화(火)다. 온도만 떼어낸 것이 아니다. 이 중 제일 중요한 것이 한열조습이다. 한열(寒熱)이 한 축이고, 조습(燥濕)이 또 다른 축이다.
기후를 좌표로 읽는 방식이다. 사막의 여름은 조(燥)한 열(熱)이다. 서울의 여름은 습(濕)한 열(熱)이다. 같은 열이지만 이름이 다른 기후다. 몸에 미치는 방식도 다르고, 치료 방식도 다르다.
몸에도 축이 있다
기후에 한열조습이 있다면, 사람 몸에도 있다.
한열은 진맥을 통해 그 사람 몸이 냉한지, 열이 많은지로 판단한다. 맥박이 느리면 한, 빠르면 열이다.
조습은 키와 체중으로 판단한다. 저체중이면 조, 과체중이면 습이다.
즉, 어떤 사람이 습열(濕熱)하다고 한다면 과체중에 열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 무더위(습+열)에 제일 취약하다. 보통 체격이 좋고 땀이 많고 얼굴도 붉다. 안에서 열이 나는데 바깥 습도가 배출구를 막는다. 열이 갈 곳이 없다.
조한(燥寒)한 사람, 곧 몸이 냉하고 마른 사람은 오히려 여름이 낫다고 한다. 이 사람은 겨울이 힘들다. 추워서 이불 밖으로 발을 못 내민다. 무더위도 그럭저럭 넘긴다. 대신 에어컨 바람을 쐬고, 냉수를 마시면 배가 아프고 등이 아프다. 이 사람에게 문제는 무더위가 아니라 냉방병이다.
무더위에 대한 반응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