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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6년 8월 10일

입추(立秋)

김형준
김형준 대표원장

8월 7일 저녁부터 가을이 시작됐다.

지난 8월 1일, 경남 양산의 낮 기온은 41.6도였다. 1904년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 기온이다. 종전 기록은 2018년 강원 홍천의 41.0도였고, 그마저 하루 전 세워진 기록을 다시 갈아치운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낮 기온은 여전히 34도를 오르내린다.

이 더위에 무슨 가을인가.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며칠 전 아침에도 후끈한 바람이 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입추가 지난 무렵, 잎이 짙어지고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은행나무
입추 ~ 처서 무렵

입추를 지난 나무다. 한여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절기는 온도가 아니다

입추는 24절기 중 열세 번째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35도에 이르는 순간을 말한다. 기온이 몇 도까지 떨어졌는지는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지구가 공전 궤도의 어느 지점을 지나는가, 그것만 따진다.

그래서 입추는 날이 아니라 시각으로 정해진다. 올해는 8월 7일 저녁이었다.

이 순간부터 가을(秋) 기운이 서기(立) 시작한다. 오행(五行)에서 가을은 금(金)이다. 금의 작용은 숙강(肅降), 온도가 내려가고 기(氣)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봄여름의 기운은 위로 오르고 밖으로 퍼진다. 승발(升發)이고 상승(上昇)이다. 나무가 잎을 펼치고 사람이 땀을 흘린다.

가을겨울의 기운은 정반대다. 아래로 내려가고 안으로 갈무리한다. 하기(下氣)이고 수장(收藏)이다. 이후 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사람은 두꺼운 옷을 입는다.

한껏 올라갔던 기온을 식히는 것, 그것이 금기(金氣)다.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 하기다. 펼쳐져 있던 나뭇잎이 아래로 떨어지고, 매달려 있던 열매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하기다.

태양은 멀어지지 않는다. 낮아진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어야 한다.

가을이 오는 것은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다.

지구는 7월 초에 태양에서 가장 멀었다. 1억 5210만 킬로미터다.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1월 초로, 1억 4710만 킬로미터다. 500만 킬로미터가 차이 난다. 가장 멀 때가 한여름이고, 가장 가까울 때가 한겨울이다. 지금은 그 가장 먼 지점을 지나 다시 태양 쪽으로 다가가는 중이다.

거리는 계절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을 만드는 것은 23.4도로 기울어진 자전축이다.

기울기가 만드는 것은 두 가지다. 태양의 높이와 낮의 길이.

서울에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하지에 약 76도였다. 입추 무렵에는 약 69도로 내려왔다. 추분이면 52도가 된다. 같은 햇빛이라도 비스듬히 들어오면 같은 면적에 닿는 열이 줄어든다.

망종에서 하지로 넘어가는 무렵, 잎이 무성하게 펼쳐진 초록 가로수길
망종 ~ 하지 무렵

낮의 길이도 함께 줄었다. 서울 기준으로 하지(6월 21일)에 14시간 46분이던 낮이 오늘 8월 10일에는 13시간 48분이다. 58분, 거의 한 시간을 잃었다.

태양이 낮아지고, 머무는 시간이 짧아진다. 땅이 받는 열이 줄어든다. 기온이 내려간다.

금기(金氣)와 하기(下氣)는 관념이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태양이 실제로 내려오고 있다.

땀구멍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황제내경》 「소문(素問)·거통론(擧痛論)」에 이런 구절이 있다.

炅則腠理開 榮衛通 汗大泄
더우면 살결의 땀구멍이 열리고, 기운이 통하며, 땀이 크게 난다.

더우면 땀을 내어 체온을 조절한다는 뜻이다. 우리 몸은 여름동안 그 상태로 살았다. 주리(腠理)가 열려 있고, 땀구멍이 벌어져 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었다. 몸은 그 이후에 변화한다.

낮은 아직 34도다. 몸은 여름처럼 땀을 흘리고 땀구멍을 연다. 그 상태로 새벽 바람을 맞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열린 땀구멍으로 찬 기운이 그대로 들어온다.

콧물, 재채기, 목 아픔, 몸살. 한여름에 안 걸리던 감기가 가을로 들어가는 환절기에 몰리는 이유다.

일교차가 벌어지는데도 몸은 아직 여름에 맞춰져 있다. 그 격차에서 병이 생긴다. 겨울에 더운 동남아에서 지내다가 추운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감기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같은 이치다.

몸의 계절을 바꿀 때

이제 새벽녘으로 쌀쌀하다. 잘 때 창문을 열어놓거나,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놓고 자는 습관을 교정할 때다.

잠옷 상의는 입지 않더라도 긴바지는 입고 자는 것이 좋다. 밤새 하체가 찬 기운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막아준다.

계절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몸을 거기에 맞추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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