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가면역질환
칼럼 2026년 7월 13일

오소리감투와 크론병

김형준
김형준 대표원장

한의원 진료를 마치고 방문진료를 가는 길에 동네 노포 순댓국집 창문에 붙은 '오소리감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지만 오늘은 순댓국집으로 들어간다.

오소리감투는 돼지 위(胃)다.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적다. 쫄깃하고 맛있다. 그러니 서로 탐냈다. 누가 얼른 집어 가면 잽싸게 사라진다고 해서 '오소리',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모양이 '감투'싸움 같다고 해서 오소리감투다.

찬 고기에 뜨거운 술

노포의 오소리감투 한 접시와 소주 한 병, 서비스 순댓국

오소리감투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평소 돼지고기를 즐겨먹지 않는다. 태음인에게 맞는 고기가 아니라 속이 편하지 않다. 소주도 좋아하지 않는다. 희석식 소주에는 단맛을 내는 감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그 맛을 싫어한다. 그러나 오늘은 오소리감투에 꽂혔다.

돼지고기는 성질이 차다(寒). 그래서 열(熱)이 많은 소주를 함께 시켰다.

앞 테이블

작은 노포라 이야기가 다 들린다. 사장님이 식사하고 있는 부자(父子) 테이블에 말을 건넨다.
사장님이 물었다. 아드님은 술 안 하시나 봐요.
아들이 대답했다. 크론병이라서요.
사장님이 말했다. 크론병? 그런 병도 있네.
아버지가 대신 말했다. 음식만 먹으면 계속 설사하는 희귀병이에요.

원인을 모르는 병

크론병은 1932년 미국 의사 버릴 크론(Burrill B. Crohn)의 이름에서 왔다.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나 염증이 생긴다. 소장과 대장에 잘 발생한다.

증상은 이렇다. 배가 아프다. 환자의 85%가 설사를 한다. 살이 빠진다. 크론병 환자의 90% 이상이 항문 질환을 갖고 있다. 치질로 알고 몇 년을 지내다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가 흔하다.

장 점막에 염증이 생긴 모습을 표현한 참고 이미지
크론병, 장 점막의 궤양과 비후

양방에선 아직 원인을 모른다. 유전과 면역과 환경이 얽혀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다만 환경 요인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있다. 식습관이다. 서구화된 식단, 인스턴트식품.

그런데 거기서 멈춘다. 어떤 음식이 이 사람에게 나쁜지는 말하지 못한다. 체질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통계만 있을 뿐이다. 통계는 평균을 말하지,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항염증제를 쓰고, 스테로이드를 쓰고, 면역억제제를 쓰고, 그래도 안 되면 생물학적 제제를 쓴다. 완치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염증을 눌러 놓을 뿐이다. 끝내 염증이 가라앉지 않아 장이 좁아지고 구멍이 나고 고름이 생기면, 그때는 절제한다. 그런데, 절제해도 재발한다.

원인을 모르는 병에 평생 약을 쓴다. 이것이 지금 크론병 치료의 표준이다.

구설(久泄), 장벽(腸澼)

한의학에서는 1930년대가 아닌 오래전부터 있던 병이다. 원인, 증상, 치료법이 명확히 나와있다.
구설(久泄)은 말 그대로 오래된 설사다. 즉, 안 맞는 음식이나 약에 장이 오랫동안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장벽(腸澼)은 잦은 설사로 인해 점액이나 혈액이 섞인 대변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다.

원인은 체질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찬 것에 상해서(傷冷) 생긴다.
찬 것에 상한다. 설사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한다. 그러면 장벽이 된다.

머릿속은 진료실

고개를 들어 아들의 얼굴과 체형을 훑었다. 과체중인 습(濕)한 사람이다. 맥을 보지 않았기에 장에 열이 많은지 냉한지는 알 수 없다.
머릿속은 이미 진료실이다. 무슨 체질일까? 찬 것을 즐겨 먹는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아침엔 무엇을 먹는지? 야식은 하는지?

찬 것을 계속 먹으면 소장과 대장이 냉(冷)해진다. 에어컨을 오래 쐬고 있으면 추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냉해진 장은 제 기능을 못 한다. 그 장이 스스로를 살리려고 점막에 염증을 일으킨다. 그 염증은 자가면역이 아니라, 차가워진 장이 살겠다는 반응이다.

크론병이 갑자기 발생하진 않는다. 처음에는 과민성대장증후군 정도로 버틴다. 그 상태로 몇 년을 간다. 그동안에도 찬 것은 계속 들어간다. 양기(陽氣)가 계속 깎인다. 그러다 크론병이 된다. 치료할 때는 주로 양기를 보강하며 장을 따뜻하게 하는 약을 쓴다. 체질에 맞는 음식은 물론이다.

말을 걸진 않았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가만히 수저만 움직였다.
의사가 먼저 말을 걸어 좋을 것이 없다. 청하지 않으면 진료가 아니다. 참견이다.
오소리감투는 맛있었다. 담백하고 쫄깃한 것이 술안주로 좋았고 서비스 순댓국과 함께 맛있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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