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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6년 6월 11일

물 2리터와 뱃속의 물소리

김형준
김형준 대표원장
물이 담긴 유리컵 진료실에서 몸이 잘 붓는다고 하는 환자들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물은 하루에 얼마나 드세요?"

하루에 2L를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마시고 있다며 뿌듯하게 쳐다보는 분도 있고, 물을 많이 못 마신다고 말 끝을 흐리며 자신없이 답하는 분도 있다.

그러면 "물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고도 하고, 또 "잘 하고 계세요. 물 많이 드실 필요 없습니다." 라고도 한다. 그러면 대부분 놀란 눈을 뜨며 "네?" 약간 당황해 한다.

숫자만 남은 문장

"하루 2리터"의 출발은 1945년이다. 미국 식품영양위원회가 성인은 하루 약 2.5리터의 수분이 적당하다고 권고문을 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이 있었다. "이 수분의 대부분은 음식 속에 들어 있다."

즉, 밥과 국, 과일, 반찬 안에 든 물까지 합친 양이라는 뜻이다. 세월이 흐르며 뒷 문장은 잊혀졌다. 숫자만 사람들 기억에 남았다.

1974년 미국의 한 영양학 책은 "하루 6~8잔"을 썼다. 여기에도 단서가 붙었다. 커피와 차, 과일로 채워도 된다고. 이번에도 단서는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다.

2002년, 미국의 한 생리학 교수가 이 "물 8잔"의 근거를 끝까지 추적했다. 결론은 한 줄이다. 근거가 없다. 건강한 사람은 갈증이 날 때 마시면 충분하다.

80년 넘게 통한 상식이, 사실은 조건이 사라지고 숫자만 남은 문장이었다.

물도 음식이다

물도 먹는 것이니 음식이다. 데워 먹지 않는 이상 물은 차다. 일반적으로 상온 15~25°C의 물을 마신다. 체온은 36.5°C 이니 상온의 물은 내 몸에서 차게 작용한다. 냉장고나 얼음물을 마시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더 차다.

물은 습하다. 濕(습)이라는 한자에 水가 들어 있고, 습도가 대기 중 수분의 정도를 뜻하듯 물은 습하다.

소양인이나 태양인 중에 열이 많고 마른 이에게 물은 가뭄 속의 단비다.
소음인이나 태음인 중에 몸이 차고 비만인 사람에게는 물 2리터는 독(毒)이다.

마신 물은 저절로 돌지 않는다. 위장이 받아서 체온과 같게 만들고, 체액순환을 통해 우리 몸을 돌다가, 걸러서 내보내진다. 이 작용은 전부 몸의 생명력, 양기(陽氣)가 하는 일이다.

양기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양기가 적은 사람에게 과도한 물은 돌지 못한다. 돌지 못하면 고인다. 움직이지 않는 병적(病的)인 물을 담음(痰飮)이라 한다. 2천 년 전 의서에 이미 적혀 있는 병이다.

논에 내리는 비

물이 담긴 논 몸은 논이다. 마시는 물은 비다.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갈라진다. 사람도 물이 부족하면 피부가 마르고 대변이 굳는다. 이건 쉽다. 갈증이 생기면 마시면 된다.

문제는 장마다. 물이 잘 안 빠지는 논에 비가 계속 내리면 어떻게 될까?
많은 물이 고인 논의 벼는 뿌리부터 상한다. 위장에 물이 고이면 속이 출렁대고 입맛이 떨어진다.

비에 젖은 양말과 신발이 무겁듯, 습이 가득한 사람은 팔다리가 무겁고 늘 피곤하다. 머리도 무겁고 멍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두덩이가 붓고 손발이 붓는다.

같은 비라도 땅이 다르면 결과가 다르다. 모래땅은 큰 비도 금방 흘려보낸다. 진흙땅은 며칠씩 웅덩이에 물을 안고 있다.
같은 물이라도 몸이 다르면 결과가 다르다.
열이 많은 사람에게 2리터는 단비지만,
냉기가 많은 사람에게 같은 2리터는 장맛비다.

논의 물을 말리려면 햇볕이 필요하다. 햇볕 없는 논에 물만 계속 부으면 어떻게 될까?
몸의 물을 돌리려는 양기가 필요하다. 양기 약한 몸에 물을 계속 마시면 어떻게 될까?

수독증(水毒症)

많은 물이 독이 되면 몸에서 다음과 같은 증상이 생긴다.

  • 공복에 움직이면 복부에 물소리가 난다
  • 물을 마셔도 갈증이 안 없어진다
  • 자고 나면 눈두덩이와 손발이 붓는다
  • 머리가 무겁고 멍하다
  • 물은 늘렸는데 소변은 그대로다
  • 혀가 붓고 가장자리에 이빨 자국이 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필요한 건 물이 아니다.
물을 돌리는 양기다.

그래서, 어떻게 마실까

무조건 하루에 물 2리터는 틀린 말이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물을 마시지 말라는 것도 틀린 말이다. 건강에 대한 모든 명제는 상대적이다. 체질과 몸 상태와 양기 상태에 따라서 마시는 물을 조절해야 한다.

누군가는 하루에 물 2L씩 마셔야 건강해지지만,
누군가는 하루에 물 2L씩 마시다 보면 오히려 수독증에 걸린다.

국과 찌개가 오르는 한국 밥상은 이미 상당한 물을 '먹고' 있다. 또한 과일과 음료를 많이 마시는 습관을 돌이켜보면 역시 많은 양의 물을 먹고 있다.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라는 말이 유행하듯 요즘은 찬 음료(물)을 많이 마신다. 이건 중요한 이야기라, 나중에 따로 글을 쓸 생각이다.

물을 마셔야 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갈증이다. 갈증은 물이 필요할 때 울리는 알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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