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열풍, 오히려 설탕이 반갑다
1879년, 한 화학자가 저녁을 먹다 손끝에서 단맛을 느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콜타르 화합물을 연구하던 콘스탄틴 팔베르크였다. 그날 그는 실험을 마치고 손을 씻지 않은 채였다. 단맛의 정체가 궁금했던 그는 실험실로 돌아가 그날 다룬 물질을 하나씩 맛봤다. 마침내 범인을 찾았다. 설탕보다 약 300배 달면서 칼로리는 없는 물질. 사카린이었다. 설탕 없이 만든 첫 단맛은 이렇게 '실수'로 태어났다.
그 뒤로도 단맛은 자꾸 우연히 발견됐다. 1965년, 한 화학자는 궤양 치료제를 만들다 무심코 손가락을 핥았다가 단맛을 봤다. 아스파탐이다. 1976년에는 한 연구원이 'test'하라는 지시를 'taste'로 잘못 듣고 화합물을 입에 댔다. 수크랄로스다. 설탕의 수백 배 단맛을 내는 이 합성 감미료들은, 하나같이 실수의 산물이었다.
2026년 대한민국. 편의점 냉장고가 '제로'로 채워졌다. 콜라도 제로, 사이다도 제로, 커피도 제로다. 설탕 0, 칼로리 0. 비만이 걱정인 사람도, 혈당이 걱정인 사람도 안심하고 집어 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건강을 팔고, 원가는 설탕보다 싸다
여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단맛은 싸다. 아세설팜칼륨은 1kg에 2만 원 남짓, 수크랄로스는 5만 원 안팎이다. 설탕보다 비싸 보인다. 그런데 수크랄로스는 설탕의 600배, 아세설팜칼륨은 200배 단맛을 낸다. 깨알만큼만 넣어도 된다는 뜻이다. 같은 단맛을 내는 데 드는 원가를 따지면, 설탕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로 떨어진다. 업계가 수크랄로스를 '가성비 갑'으로 꼽는 이유다. 게다가 일부 나라가 매기는 설탕세(稅)도 피해 간다.
그러니 제조사로서는 손해 볼 게 없다. '제로'라는 두 글자는 건강을 팔고, 그 단맛의 원가는 설탕보다 한참 싸다. 건강한 이미지와 싼 원가, 둘을 한꺼번에 쥔다. 우리는 '제로' 음료를 고를 때만 단맛을 먹는 게 아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도, 소주 한 잔에도, 과자 한 봉지에서도, 하루 종일 화학적 단맛에 길들여진다.
0칼로리라고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제로'일까.
혀는 단맛을 느꼈다. 그런데 위장으로 들어온 에너지가 없다? 느낌과 실제가 어긋난다. 2023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를 하나 냈다. 살을 빼거나 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무설탕 감미료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체지방을 줄이는 효과가 없고, 오래 쓰면 오히려 당뇨와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최근 연구들은, 이 단맛이 장(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고 의심한다. 2014년 이스라엘의 한 과학 연구진은 인공감미료가 장내 세균의 균형을 흔들어 혈당 조절을 어지럽힐 수 있다고 보고했다. 쥐 실험이 중심이었지만, 일부 사람에게서도 같은 반응이 나타났다. 그것도 사람마다 정도가 달랐다. 동물·세포 실험에서는 장벽의 이음새가 헐거워지는 '장누수'까지 관찰됐다.
다만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장과 혈당에 관한 이 결과들은 아직 동물·세포 단계가 많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영향이 있다'와 '없다'로 엇갈린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또렷하다. '0칼로리'라고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단맛은 약이 되기도, 정체가 되기도
맛은 그저 맛이 아니다. 맛마다 고유한 기운이 있다. 그중 단맛, 곧 감미(甘味)는 기운을 보강하고 조절하는 맛이다. 비위(脾胃)를 보강하고 굳은 몸을 풀어준다. 지치고 기운이 빠질 때 단것 한 입에 힘이 도는 것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우리가 흔히 힘들 때, 당 떨어졌다는 말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허기진 길에 찾던 꿀물 한 잔, 조청 한 숟갈이 그래서 약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지나칠 때다. 한쪽 맛에 치우치는 것,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단맛도 과하면 몸 안에 정체(停滯)를 부른다. 흐름이 막히면 순환이 더뎌진다. 더구나 실험실에서 합성된 화학적 단맛이 몸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칼로리가 0이라고 몸에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몸에 좋은 단 맛이라 오인하게 만들어서 섭취를 부추기는 현 세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
설탕이 정직한 이유
그래서 오히려 설탕이 반가운 요즘이다. 설탕이 건강해서가 아니다. 정직해서다. 먹은 만큼 칼로리를 내고, 몸은 그만큼 정직하게 반응한다. 과하면 해롭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줄이고 조절할 수 있다. 반면 '제로'라는 가면을 쓴 단맛은 몸에 좋다는 인상까지 덤으로 안긴다. 정작 그 단맛에 얼마나 깊이 길들여지는지 가린 채.
진짜 문제는 칼로리가 아니다. 단맛을 끊지 못하는 습관이다. 우리는 목이 말라 마시는가, 아니면 단맛을 찾아 마시는가. 미디어의 영향으로 문화적으로 아침에도 음료, 점심에도 음료, 오후에도 또 음료. 설탕은 줄였는데 단맛은 하루 내내 이어진다.
물 한 잔의 당연함
목이 마를 때 가장 좋은 것은 물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건강은 대개 그 당연한 데서 시작된다.
정말 목이 말라서 마시는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문화적으로 길들여져서 마시는 것은 아닌지?
건강에 좋다고 인식하고 마시는 것은 아닌지?